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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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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해서 편법을 추구하거나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조언을 좇는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잘못된 교훈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망치는 생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된다. ​ 가끔 주변에서 영웅담이랍시고 어떻게 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느니 또 자식이 신혼 아파트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미리 혼인신고를 했다는 등 머리를 잘 쓰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 편법과 꼼수와 사행이 난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어지럽고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내게 그런 모습들은 좋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난 사실 솔직담백한 편이어서 뭔가를 꾸미거나 거추장스럽게 걸치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그런지 화장품을 바르거나 향수를 뿌리거나 멋진 옷을 걸치는 일이 낯설다.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모호한 자세로 일관하는 이들을 그래서 싫어하는 것 같다. 불합리한 일이 생기면 그것을 표현하고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반대로 주변 환경에 의외로 잘 적응하고 불편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남들이 지적하지 않는 한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도대체 난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인간은 관찰할수록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찰하는 취미가 있는데 관찰하는 가운데 수많은 충격을 경험했다. 가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며 패닉에 휩싸이기도 하고 이질적인 문화 충격에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릴 때가 있다. 주변에서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그러는데 테크니컬라이터가 분석하는 행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 그중 끼리끼리 모여 뭔가를 모의하고 작당하는 이들도 보게된다. 패거리를 형성한다는 것은 의외로 조직에서 암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사적인 모임이 생기는 것을 그래서 회사들이 꺼리는 모양이다. 물론 일을 할 때 여럿이 힘을 합치면 당연히 효율적일 것이

민주주의와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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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나 이슬람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가보면 샤리아 경찰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이슬람인들이 많은 영국에서도 암묵적으로 샤리아 경찰은 활동한다. 이슬람 법률인 샤리아를 시행하기 위해 해당 법원과 경찰을 만들어 이슬람 교리와 법률 준수를 강제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 이들은 일반 경찰과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셈인데 그들은 종교적 불법 행위에 대해 처벌한다. 샤리아 경찰은 일반 법체계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권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다른 종교나 문화를 인정하지 않기에 분쟁을 야기시키곤 한다. 그래서 이슬람 종교를 인정하고 자치를 허용하게 되면 이런 기구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이를 테면, 이슬람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이슬람 여성이 이교도인과 결혼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발각되면 샤리아 경찰에 의해 돌로 맞아 죽거나 린치를 당하게 된다. ​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가 강해지면 이란과 같은 신정 국가로 변모한다. 터키는 케말 파샤 집권 이후 세속법을 적용하고 달력도 유럽 달력을 사용하고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등 유럽국가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최근 에르도안이 집권하면서 국가 이름도 튀르키예로 바꾸었고 터키 정치는 이슬람 종교를 두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는 터키가 서방과 척을 지고 신정 국가로 변모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 영국에는 산업혁명 당시 철강산업으로 부흥했지만 대처 수상 때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슬럼화된 로더럼이란 도시가 있다. 이곳에서 1997년부터 2013년 사이 파키스탄 이민자 갱단이 1400명이 넘는 여자 아이들을 인신매매에 동원하며 유괴.강간.폭행을 가한 사건이 있었다. ​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인종차별이 될 수 있다며 노동당이 90%인 지역 의회에서 이 사건은 어긋난 소년 범죄로 치부하며 조직적으로 은폐됐다가 알렉시스 제이란 교수에 의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다문화 정책을 추진했던 노동당은 이런 엄청난 사건을 방임하고도 입을 닫거나 다수의 사건을

칼럼: 서로 존중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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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홍콩 영화를 보며 복수를 모티브로 수많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의 고사에도 보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복수에 진심인 것을 보게 된다. 스승이나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온 인생을 바친 이야기가 칭찬을 받을 정도로 그들의 집단의식에는 복수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각인돼 있다. ​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반기를 드는 국가들에 복수하는 행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것이기에 중국의 행보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그들인데 왜 그들은 복수에 진심인 것일까? ​ 유교는 학문에 기반해 윤리 체계를 정립했는데 유교는 인간 관계와 도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부부 관계 등을 확고하게 세우다 보니 원수에 대한 처신은 존중과 이해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관계를 끊어버린 원수에 대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도덕서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명쾌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수를 갚는 것이 그 예를 다하는 것이란 결론이 도출된다. 마땅한 관계를 정립하고 합당한 예를 논했지만 그 예를 무너뜨리는 암적인 존재들에 대해 자비와 용서를 무조건 실천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것이다. ​ 유튜브에서 가끔 누가 추천해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곤 한다. 그런데 많은 설교가 횡설수설이거나 권위적이거나 폭압적인데 반해 어떤 목사는 성경적이면서도 공감할 만한 논리를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어느 날은 그가 위의 권세에 순복하라는 내용을 전달하면서 갑자기 한 진영의 대통령들이 지금껏 무엇을 한 게 있냐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을 들었다. 서론도 없는 갑작스런 논리 비약이어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 신이 정한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좋았으나 목사가 본인의 편향된 정치색을 드러내는 모습은 너무 꼴불견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에 대해 느꼈던 좋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종교는 중립을 유지할 때 아름다

칼럼: 생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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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가 된 이들에 대해 조사한 한 자료에 따르면 갑자기 일확천금을 버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압도적인 빈도수를 차지하는 경우는 의외로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라고 했다. 즉, 운이 따라야 하는데 그 기회를 살렸을 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이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성공을 하는 경우였다. 그리고 기존에 하던 일에 착안해 기회를 잡은 경우도 많았다. ​ 난 어떤 이들이 얘기하듯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랑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의외로 우연한 기회로 성공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자랑할 게 아니라 주변의 도움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실패한 이들의 넋두리도 마냥 들어주기 힘들 때가 있다.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주변에 돌리고 세상의 불평등함에 대해서도 못마땅해한다. 속단은 금물이지만 내 생각에는 매사 부정적이기에 성공의 운마저 걷어찼을 것이라 여겨진다. ​ 가끔 어떤 이들이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묻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변에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데 본인만 착각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매료됐다고 느끼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 SNS가 인기가 있는 것이고 그런 생각이 관종을 탄생시키는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친다. ​ 많은 사람들이 착각 속에 살아간다. 칭찬은 주변에서 했을 때 가치 있는 법인데 자화자찬하는 이들을 보면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불쌍해 보인다. 사실 나도 전에는 착각 속에 살던 때가 있어서 그들을 욕하지 않는다. 다들 그럴 때가 있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만다. ​ 어느 마트에서 자신을 뽑아준 사장님께 고마움에 깍듯이 인사도 하고 살갑게 커피도 뽑아주는 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출근 시간인 8시보다 1시간 빠른 7시에 출근해 청소도 하고 매장 정리를 하는 모범적인 직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가 퇴근하다가

칼럼: 꼼수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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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벌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이냐는 질문이 있어서 나름의 설명을 하게 된다. 푸틴은 집권 후 이상하게 우크라이나 민족을 차별하고 역사적 유대감이나 고유 문화를 하찮게 취급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장미빛이 아니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 또 언제든 합병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도 작용했다. ​ 푸틴과 가까운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키릴은 이에 우크라이나 국민을 악으로 규정하고 러시아의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하는데 격분해 적그리스도에 속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이런 아첨에 곁들여 우크라이나를 서방이 세운 신나치 국가로 규정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모두가 인정하는 합당한 명분이 될 수 있을까? ​ 나치 독일의 내과 의사이자 SS친위대 대위였던 요제프 멩겔레는 절멸수용소 수용자들에게 잔학한 인체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치 우생학을 위해 유대인을 선별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가 오른쪽을 가리키면 가스실로 갔고 생체 실험 대상, 강제 부역자를 손가락 하나로 선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죽음의 천사’라고 불렀다. 평소 그는 단정하고 친절했으며 명랑하게 사람들을 대우했지만 끔찍한 생체실험을 벌이던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 선택된 쌍둥이들을 잘 대우해주다가 건강해지면 인체 실험을 자행한 기행들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뉘우치지 않았고 남미로 도피해 여생을 보냈다. 심지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후 재회하기까지 했다. 그는 유유자적하며 브라질에서 살다가 상파울로 바닷가에서 수영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인생을 살다보면 멩겔레처럼 끔찍한 일을 벌이고도 자기 처신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는 이들이 제법 많다. 내 주변에서도 꼼수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그들의 플렉스에 쓴웃음을 짓지만 그게 과연 행복할지는 의문이다. 푸틴은 전쟁의 명분을 마련하다보니 얼토당토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