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평 극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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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불평이다. 불평 자체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조직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해결을 위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불만을 반복적으로 쏟아내는 행위다. 불평이 습관이 되면 구성원들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 잊어버리고 조직은 구심점과 추진력을 잃게 된다. ​ 조직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건강해진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자신의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제대로 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의심과 부정적인 말만 반복하는 태도는 조직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말은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 어느 조직에나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함께 존재한다. 긍정적인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하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누가 잘못했는가’를 먼저 따진다. 전자는 조직에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후자는 구성원들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게 만든다. 결국 조직의 분위기는 구성원들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좌우된다. ​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조직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성향을 가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욕을 하거나 보복을 하고 싶을 때 우리는 먼저 변명거리를 찾는다. ‘상대가 먼저 나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한다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것마저 부족하면 ‘이번 한 번뿐이니까 괜찮다’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 불평과 보복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외부에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조직에서 끊임없이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도, 개인적인 갈등에서 상대에게 보복하는 사람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다. 그렇게...

칼럼: 학문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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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문을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그 너머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학문의 본래 목적을 잊은 채 지식 자체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당장의 현안이나 욕망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왜 사는지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과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분명히 다르다.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인정받으려 하고 자신을 드러내려 할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조금 다른 태도를 갖는다. 그 사람은 사람들의 박수보다 자신의 양심에 귀를 기울인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라 해도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할 것이다. ​ 돌이켜보면 내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나는 삶에 우연이 없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내 예측 범위 안에서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내가 영어로 글을 쓰고 Technical Writing을 가르치는 일을 할 거라고 젊은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했다. 전공을 생각하면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진로였다. ​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매뉴얼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됐다. 제대로 글을 쓰는 방법도 몰랐고 영어로 기술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더욱 낯설었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 영어를 기초부터 다시 공부했고, 글쓰기 방법론까지 찾아 배우게 됐다. 처음부터 선택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또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하나씩 배우다 보니 어느 순간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 스스로 계획해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좋은 멘토들을 만났다. 한 멘토는 글쓰기의...

칼럼: 지켜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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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DEI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의 약자로, 인종과 성별, 장애, 나이, 종교, 출신 배경 등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고 조직 안에서 부당하게 배제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 실제로 DEI가 지향하는 가치 가운데 우리가 쉽게 부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채용 과정에서 특정 배경을 가진 사람을 부당하게 배제하지 않고,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며,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을 줄이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분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넓히는 것 역시 중요한 사회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 문제는 좋은 취지의 가치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명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개인의 능력과 성과보다 집단적 특성이 우선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한 정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역차별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특정한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면 다양성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생각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 결국 중요한 것은 다양성 그 자체보다 어떻게 다양성을 구현할 것인가이다. 누구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능력과 책임, 성과가 존중받을 권리도 있다. 어느 한쪽의 가치를 절대화하기보다 서로 충돌할 수 있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바라보면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이미 현금을 사용하는 대신 휴대전화로 결제하는 문화가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알리페이(Alipay)나 위챗페이(WeChat Pay)의 QR코드를 이용하면 식당이나 상점에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결제 시스템이 고도화...

칼럼: 생각과 재생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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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은 작은 씨앗과도 같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생각 하나가 마음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생각을 반복해서 바라보고 붙잡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이 되고, 감정은 행동으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의 삶의 방향까지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에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느냐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 화가 날 수는 있다.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이유 없이 불안이 찾아올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감정이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계속 붙잡고 키우는 데 있다. 화가 났다고 해서 그 화가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둘 필요는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해서 그 미움을 반복해서 생각하며 키울 이유도 없다.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현실이 될 것처럼 믿을 필요도 없다. ​ 나쁜 생각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생각은 떠오를 수 있지만 내가 반드시 그 생각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런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바라보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 그런 점에서 자연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보여준다. 바로 우파루파의 놀라운 재생 능력이다. ​ 우파루파는 다리를 다치면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면서 ‘블라스테마(blastema)’라는 세포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이 세포들은 이후 뼈와 근육, 혈관과 신경 등 필요한 조직으로 분화해 손상된 다리를 다시 만들어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과정에서 다른 동물에게 흔히 나타나는 흉터조차 거의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파루파는 다리뿐만 아니라 척수와 심장 같은 기관의 재생 능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작은 생물의 모습이다. 우파루파는 성체가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채 외부 아가미를 가지고 평생 물속에서 살아간다. 겉모습은 귀엽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 몸 안에는 놀라운 회복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