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극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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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 자신의 본분과 역량을 넘어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들을 볼 때 특히 그렇다 .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겠지만 ,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자신보다 조금 부족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을 단정하고 평가하는 모습은 결코 보기 좋지 않다 . 어떤 이들은 도를 넘어 공무원을 하대하고 , 위정자들을 비난하며 , 심지어 신까지 삿대질하듯 깎아내린다 . 흥미로운 점은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 아마도 그들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제대로 제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 이들은 종종 부와 권력은 독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의 평화가 머물기 어렵다는 점이다 .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 그들에게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식이기도 하다 . 직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직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결국 존중이라는 사실이다 . 많은 이들이 불합리한 처우와 갑질로 고통을 겪고 있었고 , 연봉이 조금 낮더라도 존중받으며 일하고 싶다 말하고 있었다 . 어떤 경영자는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재량을 발휘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고 , 마치 장기의 말처럼 통제하려 들었다 . 직원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듯했다 . 그러나 그렇게 될수록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 이 단순한 상호작용의 원리를 경영자들이 간과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 사회나 직장에서 누구나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 이는 인간이 본래 가진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 사람은 존중을 받을 때 만족을 느끼고 , 서로 어울려 대화하며 기쁨을 나누고 싶어한다 . 우리가 사랑과 배려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그러나 스스로 계층을 구분하고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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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 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우리는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더불어 동일 한 하나님의 다른 이름을 한 하나님으로 공경한다. ​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성령이 수면에 운행하고 계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그 말씀은 성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고 구약성경에 언급된 지혜를 가리킨다. ​ 주님은 거듭해서 아버지 하나님과 자신은 하나라고 밝히셨 다. 유일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지만 가끔 하나님께서는 우리란 말로 삼위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한 분이시지만 역할을 달리해 세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이것은 실제이다. 이는 관계지향적인 하나님의 품성을 담고 있다. ​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 We believe in God as the one and only God. Yet we also honor the same God under different names, acknowledging Him as one. ​ In Genesis, Scripture records that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In the Gospel of John, we are told that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at through the Word the world was created. This Word is Christ Jesus, the So...

제사장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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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직분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 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 지니라” ​ 구약시대부터 제사장은 하나님께 서야 하는 사람으로서 거 룩함을 유지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소에 들어갈 때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주님이 오신 후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일컬음을 받 게 됐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 구약시대의 모든 거룩한 이들이 바라고 원했던 그 영광스 러운 이들이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약속했던 메시야를 영 적으로 만났고 약속했던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 야 한다. 이 놀라운 비밀을 우리는 또한 전파해야 한다. 우 리가 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 “He must not make himself unclean for people related to him by marriage, and so defile himself.” ​ From the Old Testament era, priests were required to maintain holiness, because they were those who have to stand before God. Without holiness, they could be struck down when entering the sanctuary. ​ After the coming of the Lord, we saints came to be called royal priesthood. In the same way, we must also keep ourselves holy. This is because we honor and love the Lord. ​ We are the very people who all the holy ones of the Old Testament longed for and hoped to see. Because ...

꼴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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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불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 잡이니라” ​ 살면서 꼴불견을 볼 때가 많다. ​ 자신의 본분이나 역량을 넘어서서 함부로 사람들을 재단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꼴불견이라 생각한다. ​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판단한다면 타 당하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자신보 다 조금 못한 사람을 함부로 재단할 때 개낀도낀이란 생각 이 든다. ​ 그들이 도를 넘어 겸손할 줄 모르고 신마저 재단하는 것을 볼 때면 가증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성경은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우러러보는 것이 지혜라고 거 듭 밝히고 있다. 또 존귀하게 되려면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얘기했지만 진정한 정답을 얘기하지 못했다. 인간의 지혜로는 신령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 이다. 누가 있어 이런 지식을 얘기할 수 있을까? ​ “The fear of the LORD teaches a man wisdom, and humility comes before honor.” ​ In life, we often encounter things that are downright unpleasant to witness. ​ It is especially distasteful to see people who go beyond their own role or ability and casually make judgments on others. If a truly capable person were to evaluate someone less capable, we might find it reasonable. However, when those who are no better judge others who are only slightly beneath them, it feels like the pot calling the kettle black. ​ When such people go even further—lac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