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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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불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 잡이니라” ​ 살면서 꼴불견을 볼 때가 많다. ​ 자신의 본분이나 역량을 넘어서서 함부로 사람들을 재단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꼴불견이라 생각한다. ​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판단한다면 타 당하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자신보 다 조금 못한 사람을 함부로 재단할 때 개낀도낀이란 생각 이 든다. ​ 그들이 도를 넘어 겸손할 줄 모르고 신마저 재단하는 것을 볼 때면 가증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성경은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우러러보는 것이 지혜라고 거 듭 밝히고 있다. 또 존귀하게 되려면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얘기했지만 진정한 정답을 얘기하지 못했다. 인간의 지혜로는 신령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 이다. 누가 있어 이런 지식을 얘기할 수 있을까? ​ “The fear of the LORD teaches a man wisdom, and humility comes before honor.” ​ In life, we often encounter things that are downright unpleasant to witness. ​ It is especially distasteful to see people who go beyond their own role or ability and casually make judgments on others. If a truly capable person were to evaluate someone less capable, we might find it reasonable. However, when those who are no better judge others who are only slightly beneath them, it feels like the pot calling the kettle black. ​ When such people go even further—lackin...

인생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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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목적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 임이니라” ​ 인생이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허무할 뿐이라는 사실을 우 리는 추론을 통해 알 수 있다. ​ 유학을 연구했던 이들은 생의 목적을 이름을 널리 떨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죽으면 이름을 알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설파하는 불교에서는 생의 목적이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윤회의 사슬을 끊는 것이라고 얘 기한다. 이 해탈은 '나'라는 실체가 없고 집착할 목적이 없 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얻을 것이 있다는 것 자체를 집착이라 해석하는 그들에게 해탈도 결국 무상일 뿐이다. ​ 그렇다고 보면 불교는 공론임이 드러나게 되고 말장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을 선사하는 지혜가 최고의 가치임을 얘기하고 있고 그 지혜의 실체를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했 다. ​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극락의 상태는 오직 신만이 줄 수 있 는 가치이며 우리가 육신을 벗고 영으로 완전해질 때 선물로 받게 된다. 이보다 큰 가치는 결코 있을 수 없다. ​ “For whoever finds me finds life and receives favor from the LORD.” ​ If life were not a spiritual reality, we can infer through reason that it would be nothing but emptiness. ​ Scholars of Confucianism once taught that the purpose of life was to make one’s name widely known. But what meaning does fame have once a person dies? ​ In Buddhism that teaches that all things are impermanent, the purpose of life is said to be liberation—escaping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