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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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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석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누군가 부탁하면 조직의 상황이나 향후 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해주곤 한다. 물론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기에 조심스럽다. 제한된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므로 틀릴 수 있다고 미리 말한다. ​ 한번은 부탁을 받고 어느 조직의 미래를 진단해준 적이 있다. 그 조직은 유망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었고 외형적으로도 가능성을 가진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보였다. 뚜렷한 플랜과 전략이 구성원들에게 공유되지 않은 채 조직의 방향성이 특정 리더가 좌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할 만한 명확한 전략이 없었고 리더의 판단과 인맥, 경험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면 리더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조직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리더 리스크’라고 말했다. 당시 조직론과 경영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었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는 나 역시 확신할 수 없었다. ​ 잊고 있던 어느 날, 그 조직의 리더가 건강상의 이유로 결국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 셈이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회사는 재정비를 해야만 했다. 조직의 방향을 개인의 자신감이나 인맥에 의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따른다. ​ 과거 정리해고를 주도했던 사람이 건강 악화로 물러나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나는 인간 내면의 갈등과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외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도 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 한 지인은 교회에서 믿었던 장로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기를 당한 뒤에도 그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떳떳해 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그 일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그는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 나는 종교적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과 실제로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찬송을 잘 부르고 기도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그 ...

칼럼: 불평 극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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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불평이다. 불평 자체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조직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해결을 위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불만을 반복적으로 쏟아내는 행위다. 불평이 습관이 되면 구성원들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 잊어버리고 조직은 구심점과 추진력을 잃게 된다. ​ 조직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건강해진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자신의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제대로 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의심과 부정적인 말만 반복하는 태도는 조직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말은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 어느 조직에나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함께 존재한다. 긍정적인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하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누가 잘못했는가’를 먼저 따진다. 전자는 조직에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후자는 구성원들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게 만든다. 결국 조직의 분위기는 구성원들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좌우된다. ​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조직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성향을 가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욕을 하거나 보복을 하고 싶을 때 우리는 먼저 변명거리를 찾는다. ‘상대가 먼저 나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한다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것마저 부족하면 ‘이번 한 번뿐이니까 괜찮다’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 불평과 보복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외부에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조직에서 끊임없이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도, 개인적인 갈등에서 상대에게 보복하는 사람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다. 그렇게...

칼럼: 학문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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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문을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그 너머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학문의 본래 목적을 잊은 채 지식 자체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당장의 현안이나 욕망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왜 사는지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과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분명히 다르다.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인정받으려 하고 자신을 드러내려 할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조금 다른 태도를 갖는다. 그 사람은 사람들의 박수보다 자신의 양심에 귀를 기울인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라 해도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할 것이다. ​ 돌이켜보면 내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나는 삶에 우연이 없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내 예측 범위 안에서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내가 영어로 글을 쓰고 Technical Writing을 가르치는 일을 할 거라고 젊은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했다. 전공을 생각하면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진로였다. ​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매뉴얼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됐다. 제대로 글을 쓰는 방법도 몰랐고 영어로 기술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더욱 낯설었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 영어를 기초부터 다시 공부했고, 글쓰기 방법론까지 찾아 배우게 됐다. 처음부터 선택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또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하나씩 배우다 보니 어느 순간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 스스로 계획해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좋은 멘토들을 만났다. 한 멘토는 글쓰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