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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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이름난 대학 교수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단정한 외모와 지적인 분위기까지 갖춘 그녀는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고, 몰래 마음을 품은 총각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없는 시대의 이야기였다. ​ 당시는 사랑보다 집안이 먼저였고, 개인의 의사보다 어른들의 결정이 우선이었다. 지역 유지들의 중매로 혼담이 오갔고, 시아버지가 될 사람을 한 번 만난 자리에서 결혼은 사실상 결정되었다. 신랑 역시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를 갖지 못한 채 결혼이라는 운명 앞에 서게 된 것이다. ​ 훗날 그녀는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시아버지가 내 손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 손이면 일을 잘하겠구먼.' 하시더라." ​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 한마디는 축복이 아니었다. ​ 결혼과 동시에 그녀의 교편 생활은 끝이 났다. 아이를 낳고 시부모를 모시기 시작하면서 그녀 앞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이 펼쳐졌다. ​ 그녀는 며느리가 아니라 머슴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논과 밭을 오가며 일해야 했고,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 됐지만 예외일 수 없었다. 젖을 먹이기 위해 잠시 손을 멈추기라도 하면 호통이 쏟아졌다. 어느 날은 아이가 논두렁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는데도 시아버지는 태연하게 말했다.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그게 뭐 대수라고." ​ 그 말은 그녀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백일도 채 되지 않은 딸은 어머니 품 대신 집에 홀로 남겨졌다. 아이가 배고파 울자 시아버지는 염소젖을 먹였다. 결국 아이는 장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도 그녀는 절망을 경험했다. ​ 시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하자 자신의 택시비만 계산한 뒤 아무렇지 않게 내려버렸다. ...

칼럼: 치우치지 않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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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친구가 부자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배부른 고민"이라며 다그쳤다고 했다. 그래서 난 부자가 얼마나 깊은 고민과 불행을 겪을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것을 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만큼 많은 것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산이 늘어날수록 관리해야 할 대상도 많아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압박도 커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 부담이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도 찾아온다. 그 부담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는 경험한 사람들만 안다. ​ 이처럼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편견과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러한 선입견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에 맞춰 해석하려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시작된다. ​ 그래서 우리는 특정 국가나 민족, 집단을 단편적인 경험만으로 일반화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역사도, 사람도, 문화도 훨씬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과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자세가 성숙한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편견은 갈등을 낳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은 신뢰를 만든다. 결국 건강한 사회는 자신의 확신만을 앞세우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대화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다. ​ 여러 건의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외국인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각 나라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화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일본인들은 사실을 비교적 신중하게 표현하는 편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때로는 사실을 축소해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반면 중국인들이 하나의 사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