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과 존중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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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더 많은 재산과 더 높은 지위, 더 큰 권력을 얻으면 삶이 안전해지고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산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고, 권력도 임기가 끝나거나 시대가 바뀌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우리의 생명조차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소유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한다고 착각한다. 돈이 많으면 존경받을 것이고, 권력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를 이룬 사람도 불안에 시달리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도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소유가 커질수록 만족도 함께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커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행복은 소유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우리는 말한다. 삶을 편리하게 할 수는 있지만, 소유가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존재인 것이다.

소통하지 않은 채 홀로 모든 일을 해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뛰어난 능력으로 혼자서도 큰 성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한 사람이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때로는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으며 주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그 영향력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사람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지식, 관점을 나눌 때 더 나은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뛰어난 리더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보다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지속되는 경쟁력은 개인의 능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개인도 성장하고 조직도 발전한다. 인생에서의 만족은 위에서 거론한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사랑하는 가운데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타고나는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나 열정으로 보지 않았다. 상대를 세심하게 살피고 보호하려는 마음, 상대가 필요할 때 기꺼이 응답하는 책임감,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 더불어 상대의 고유한 개성과 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모두 사랑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기술을 익히듯 연습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이기심을 다스리는 과정을 통해 맺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삶의 태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주변에서 정치에 지나치게 몰입한 사람들을 종종 본다.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이른바 가짜뉴스를 그대로 믿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접할 때도 많다. 그때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갖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신념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기 어려워지고, 사회적 갈등만 키우게 된다. 더욱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퍼뜨리는 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행동이다.

소통은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함께 소통하며 어울리기 위해서는 먼저 상식에 기반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 해야 한다. 주장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전쟁이나 갈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사랑과 존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담보됐을 때 사회에 희망이 생기고 다수도 행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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