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치우치지 않는 지혜...
한 친구가 부자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배부른 고민"이라며 다그쳤다고 했다. 그래서 난 부자가 얼마나 깊은 고민과 불행을 겪을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것을 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만큼 많은 것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산이 늘어날수록 관리해야 할 대상도 많아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압박도 커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 부담이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도 찾아온다. 그 부담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는 경험한 사람들만 안다.
이처럼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편견과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러한 선입견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에 맞춰 해석하려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국가나 민족, 집단을 단편적인 경험만으로 일반화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역사도, 사람도, 문화도 훨씬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과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자세가 성숙한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편견은 갈등을 낳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은 신뢰를 만든다. 결국 건강한 사회는 자신의 확신만을 앞세우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대화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다.
여러 건의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외국인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각 나라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화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일본인들은 사실을 비교적 신중하게 표현하는 편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때로는 사실을 축소해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반면 중국인들이 하나의 사실에 대해 말하면서 취지와 다른 내용을 덧붙이면서 배가 산으로 가게 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그 때문에 논의의 방향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았다.
이러한 차이는 역사 문제를 둘러싼 태도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난징 대학살’이다. 일본군이 중국 난징에서 대규모 학살과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 일본 정치인과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희생자 수를 축소하거나 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과 국제 역사학계는 다양한 사료와 생존자 증언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도 비슷한 사례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의 관여와 피해 여성들의 의사에 반한 모집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후 일부 일본 정치인들은 강제성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발언을 반복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반대로 중국 정부 역시 역사 문제에 대해 과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항일전쟁 승리에 중국공산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당시 대규모 정규전의 대부분은 국민당 군이 수행했고 공산당의 역할은 공식 서술보다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 지방정권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추진했는데, 한국과 국제 학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역사는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와 민족주의가 개입할수록 사실은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국가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다양한 사료와 연구를 통해 함께 검토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것이 국가 간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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