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통 가능한 사회...
1950년 2월,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는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이 확산되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마저 공산주의에 관대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이라는
공포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고발하는 상황에 내몰렸고,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은 사회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지식인들조차 이러한 분위기에 짓눌려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으면 사상적 낙인이 찍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역시 냉전의 영향권 속에서 유사한 사회 분위기에 휩쓸렸고,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된 지금까지도 그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반공 교육에 크게 영향을 받은 노령 세대가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특정 이슈가 제기되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주변국의 정치적 상황과 안보 위협을 고려하면 그들의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이 과도하게 표출될 경우, 사회 전체를 이분법적으로
갈라치기 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경직된 사고’가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어린 시절 경험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닮아 목소리가 컸고 기개도 남달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평범하게 성장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내 거친
기운을 누르고 절제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나는 비교적 조용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재된 에너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억눌린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식으로 표출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한 장난을 치거나, 드러나지
않는 분야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식으로 움직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 에너지는 독서로 바뀌었고,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억압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통제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억압이 인생에서
트라우마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진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소통 시 오해를 낳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경험일 수 있지만 트라우마가 된 억압은 우리를 비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경험은 사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비슷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어떤 이념이나 가치가 필요 이상으로 강요될 때, 사람들은 위축되거나 왜곡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다양한
생각이 허용되고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는 환경에서는 건전한 토론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에 근간한 경계심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를 경직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건강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선배들의 희생과 투쟁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토양을 당연시 여기기보다 그것을 빚어낸 선배들의 노력에 감사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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