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결된 사회...
오랫동안 전문적인 일을 해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그것이 독서 모임이든, 같은
취미나 신앙을 공유하는 자리이든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풍부한 경험이 오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의외로 많은 전문가들이 심리적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모임을 이끄는 이가 심리학자이거나 코칭 전문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성이 곧 인격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사회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쌓아온 경력 탓에 모난 성품으로 주변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지나치게 철저한 완벽주의 성격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특히 섬세한 감각을 요구하는 예술가들의 경우, 예민함이 극대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스로도 마음을 다스릴 방법을 찾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의 목적은
제각각이다. 독서를 중심으로 할 수도 있고, 와인이나 차를
나누는 모임일 수도 있으며, 경영자들의 교류 자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소통하는 가운데 각자의 문제를 비춰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돌파구를 찾는다는 점이다. 같은 일을 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공감할 수 있고, 전혀 다른 시각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자주 한다. 특정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다른 사례로 치환해 해답을 찾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자리에서는 한층 더 솔직해지고
기대 이상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자리에서 공감을 크게 이끌어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중심 인물이 되고, 때로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모임은 단순한 친목을 넘어 서로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장이 된다. 우리 주변에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만남을 주선하는 이들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회적 촉매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 역시 한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목소리가 좋고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처음 듣는 말이라 당시 당황했지만, 그 피드백 덕분에 결국 강의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피드백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어느 대기업에서 목소리가 밋밋하고 발음이 흐릿하다는 지적을
받고 크게 좌절한 적이 있다. 순간 삶이 녹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바꿀 수 없는 부분에 좌절하기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기로 했다. 결국 전문성과 진정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이후에는 훨씬 나은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분명하다. 인생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장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고립된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온라인이나 게임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며 살아간다. 방식이 다를 뿐 완전히 단절된 삶은 존재하기 힘들다.
우리가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만약 그 영향과 연결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장하고 또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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