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류를 인정하는 자세...



살다 보면 도무지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불도저처럼 일을 밀어붙이며, 주저하는 이들을 향해 의지가 부족하다며 나무란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외치고, 큰 목적을 위해 작은 희생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려놓은 계획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며 다그치기도 한다.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찰이 없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시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유럽을 뒤흔들었지만, 결국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내가 아는 한 리더 역시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작업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고객에게 지적을 받으면, 그는 작업자 때문에 자신의 명성이 훼손된다며 큰소리로 야단을 치곤 했다. 미국 기업에서 멘토들에게 일을 배웠던 나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미국 조직에서는 고객 불만이 발생한 경우, 작업을 설계하고 지시한 리더가 책임을 진다. 설계와 관리가 미흡했던 자신의 책임을 언급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제시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리더가 구조적 문제를 돌아보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나는 리더십의 본질을 배웠다. 리더란 단순히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책임의 문제는 조직뿐 아니라 국가의 운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중국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국제 사회의 시선도 집중되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인 시진핑 역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중국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동안 중국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하던 외국 자본이 점차 빠져나가는 현상 역시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가 하는 여부에 있다. 그러나 권력을 오래 쥔 조직일수록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종교사에서 제기되었던 교황 무오류설처럼 스스로의 판단이 틀릴 수 없다고 믿는 태도는 조직을 경직시키기 마련이다.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눈속임으로 문제를 덮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민족적 자긍심과 공동의 번영을 강조하는 정책은 처음에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쉽다. 하지만 그 방향이 다른 나라들과의 공존보다 경쟁과 대립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국제 사회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방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책은 결국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결국 모든 오류의 책임은 일을 설계하고 이끄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자연스럽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는 것은 결코 건전한 모습이 아니다. 힘의 논리로 이치를 덮어버리려는 태도는 폭력에 가깝다. 그것은 유교의 가르침도 아니고 서양의 윤리 전통에서도 권장하는 태도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나 갑질과 같은 경직된 조직 문화가 남아 있다. 예전에 한 인도 출신 지인이 한국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며 한국 조직 문화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글에 일부 반론을 제기하며 한국 문화를 옹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지적한 문제점에 공감하기도 했다.

어떤 사회든 완벽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오류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더 합리적이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권력과 책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칼럼: 초심을 잃지 않는 지혜...

계산적인 사람들...

산 자의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