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직과 솔직함...
최근 정직하지 못한 경영자가 자신의 식견과 경험, 관계를 '과시'하는데 힘을 쏟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들이 파트너와 고객들에게 지속가능한 이로움을 가져다 주었더라면 그래도 멋지다고 하겠지만, 정직함이나 이로울 것도 그다지 없고 자신의 똑똑함만 과시하는 것이어서 정말 실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주변에 부지런함이 몸에 배인 분들이 계신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건강한데 밖에 나가서 뭐라도 일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말한다. 한 분은 70이 다 된 나이에도 농수산물 시장에서 힘쓰는 일을 하면서 땀은 정직하다고 말씀하시며, 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들은 뭣 때문에 안 되고 또 뭣 때문에 꺼려진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며 '불평'을 한다.
가진 지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없는 '자랑'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이들을 보노라면 게으른 이들의 어리석음이 떠오른다. 쓸 데 없는 지식만 가득해서 주변에 해만 끼치고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협함만 버린다면 주변에서 칭찬을 들을 텐데 하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들은 고집이 세서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우기곤 한다. 그것을 보면 정말 미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인해 고객들에게 불만의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난 내 잘못을 인정하고 고객에게 클레임을 걸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개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잘못을 숨기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또 형편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게 인간의 속성이다. 그것을 감추려는 순간 부정이 개입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는다.
한번은 영문을 국문으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멍청한 번역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일을 다시 맡는다 해도 평소의 습관 때문에 똑 같은 실수를 할 것 같아서 솔직하게 내 한계에 대해 담당자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해당 유형의 번역이 오면 또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귀뜸하는 것이니 현명한 판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한번은 궁색한 변명을 하다가 체면을 구긴 적이 있었다. 난 그것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일한 실수를 다시 저지르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니라고 어느 선배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을 가르쳐준 이가 동일한 한국인이라면 자주 찾아가서 가르침에 고마움을 표하겠지만, 미국인 선배여서 평소 고마운 마음만 품은 채 살고 있다.
내겐 멘토들이 많다. 캐나다인 멘토도 있고 미국인 멘토들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 내게 도움을 준 한국인 멘토들도 있다. 가끔 찾아가서 고마움을 표현하곤 한다. 외국인 멘토들은 내게 스킬도 교육했지만 무엇보다 일을 대하는 철학을 강조했다. 그 철학 중에 프로페셔널리즘과 방법론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아직도 내 인생의 지표가 되고 있다.
난 무엇을 안다고 해도 내가 똑똑해서 알게 된 게 아니라 주변과 소통하는 가운데 가능했음을 인정하게 됐다. 멘토들은 편법 대신에 정직함과 솔직함이 성공의 키라고 했는데 그 가르침이 너무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숙여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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