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명한 판단...
살면서 문득, 우리가 배운 역사가 반드시 진실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누군가는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았다.
1948년 이스라엘은 건국과
함께 핵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1967년
무렵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으로는 프랑스가 대신 핵실험을 했거나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협조 아래 남인도양에서 실험을 진행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스라엘이 보유한 핵탄두는 약 300기 수준으로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동의 이슬람 세력이 감히 이스라엘을 쉽게 공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핵무기
보유 때문이며, 이란이 핵개발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에 불리한 정보는 좀처럼 보도되지 않는다. 유대계 자본이 일정 부분 여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거대한 이슬람권 한가운데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미국마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 힘의 실체를 실감하게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요구하지만, 이스라엘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초강대국 미국조차 이스라엘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것일까?
미국의 선거 과정을 보면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로비 단체인 AIPAC(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미국 정치인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이 정치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선은 결국 트럼프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현지 분위기는 이미 트럼프의 승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 차이가 그렇게까지 압도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바이든 정권에 잘
보이려는 듯, 편향된 여론몰이에 가까운 보도를 이어갔다. 일부는
해리스 부통령이 될 것처럼 왜곡된 전망을 내놓았다. 언론은 사실을 전달해야 함에도, 정권의 바람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은 심히 유감스러웠다.
대선 직후 국민 앞에서 진행된 토론에서 전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의 당선을 반기지 않는다”고 발언하며, “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한 장면을 보며 깊은 우려를 느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라면 국제무대에서 절대 그런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외교란 감정이 절제된 계산의 영역이며, 말 한마디가 국가의 신뢰를
결정하는 법이다.
회의석상에서도 자신을 배제한 채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고 분개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서론 없이 본론만 있는 글을 읽고 오해하는 경우와 같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글을 쓸 때, 목적과 의도를 명확히 밝히는 ‘화제 단락’을 생략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글에는 반드시 배려의 코드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 상대의 혼란과
불쾌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감정의
골이 생겼을 때에는 이를 좁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소해 보이더라도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길은 언제나 배려와 절제를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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