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건강한 판단...
살면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기고만장해지는 우를 범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을 지우고 싶지는 않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잡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실수와 미숙함으로 얼룩진 시절이 있기 마련이며, 성장이란 결국 그 과정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얼마 전 한 배우의 과거를 들춰 세상에 공개하며 그의 미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알 권리’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미 대가를 치르고 새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을 단죄하며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려 한 것이다. 이는 비윤리적인 저널리즘의 폐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최근 홍콩 신계 지역에서 발생한 초대현 화재는 우리에게 위험의 원인을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40년이 넘은 고층 주거용 건물을 리모델링하던 중, 전통적인 대나무 비계와 가연성 외장재가 화재를 급속히 확산시켰고 수백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오래전부터 위험성이 여러 번 지적되었음에도, 비용절감과 관행을 앞세워 안전을 소홀히 한 규제 당국과 시공업체들의 무책임이 이 비극을 낳았다. 무엇보다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도 방치한 중국 정부의 태도는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전에 바로잡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고였다.
사람을 판단할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점의 폭을 유심히 관찰한다. 어떤 이들은 한쪽의 말만 듣고 다른 한쪽의 입장을 외면한다. 이런 사람은 판단의 균형을 잃기 쉬우며, 같은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 시각에서 진위를 따지지 않고 극단의 감정만 앞세운 결과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나 역시 과거에는 한쪽 말만 듣고 판단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편협한 이들을 보면 과거의 내 모습처럼 미숙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학문적 결론을 내릴 때나 종교를 선택할 때 또는 업무 판단을 내릴 때조차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이들을 실제로 많이 보았다. 학문이 깊다고 또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그 사람의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다!
과거 나는 누군가와 협력하기 전에 그 사람의 태도를 확인하는 작은 ‘실험’을 하곤 했다. 예컨데 세탁물을 함께 섞을 때 기분 나빠하는지 혹은 다소 이기적인 요구를 했을 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본다. 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불편함을 드러내고, 호감을 가진 사람은 일단 내 입장을 옹호하려 했다. 이것은 내 나름의 방식으로 협력 여부를 가리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일도, 시스템의 안전성을 검토하는 일도 결국 같은 원리가 아닐까? 가장 타당한 기준을 세우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현실을 인식하며, 필요할 때 스스로를 수정하는 태도가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잘못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더 건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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