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증폭 스킬...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종교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도를 당해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종 걸음으로 지나친다. 그들은 입으로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사랑이 필요한 순간에는 외면하는
것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늦을까봐 어쩔 수 없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어떤 순간이든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했다. 사랑이란 결국, 바쁜
중에도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여유를 가진 이들이 참 드물다.
예전에 한 기독교인 사장이 “회사는
양심이 없는 조직”이라며 자신의 비도덕적 행동을 정당화한 적이 있었다.
그는 신앙과 현실은 별개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그들은 “현실은 치열하니 신념보다 생존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마음에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 강의에서 ‘증폭(Amplification) 스킬’을 중요하게 다룬다. 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불완전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선입견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메시지에 ‘노이즈’가 끼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는 주제를 강조하고
감정의 셈여림을 부여한다. 그래야 독자의 주의를 사로잡을 수 있다. 이것이
증폭 스킬의 본질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사실에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에는 먼저 ‘화제 단락’을 통해 독자의 관심을 이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시작하면, 그 이름만으로도 독자의 관심이 집중된다. 유튜브 영상의 ‘인트로 미끼’도 같은 원리이다. 논문이나
보고서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증폭 스킬을 사용해야만 핵심 의도가 살기 때문이다. 말로 소통을 할 때에도 분명하고 또렷한 억양을 사용하는 것도 동일한 스킬이라고 보면 된다. 증폭하지 않으면 원하는 소통이 어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결국 증폭 스킬은 여유 없는 연대인에게 강제로 여유를 부여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은 흥미와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을 끌려면 흥미와 쾌락의 요소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삭막해지고 여유를
잃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늘 이 글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통이 왜 증폭 스킬 없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는지를 전하고 싶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보고, 앞으로의 대화나 글쓰기에 이 기술을 활용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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