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입양인 문제...
과거 대한민국은 후진국이었기에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어려워 해외로 입양을 많이 보낸 나라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했고, 입양아들이 부모를 찾아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부모를 만나더라도 이후 만남을 지속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입양아들은 대개 “왜 나를 버렸는가?”라는 질문을 부모에게 던지곤 하는데, 한국의 수직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로 인해 ‘버릇없는 자식’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식으로서의 관계보다 보상을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여유인데, 성급한 대처가 오히려 문제를 키우기도 한다. 부모 역시 미안한 마음에 금전으로 보상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아울러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도, 아이가 자라온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과거에는 아이를 입양 보내며 금전을 받는 일도 적지 않았다. 정말 아이를 불쌍히 여겼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부모로서 미숙했기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 여겨진다.
1930년부터 4년마다 세계 최고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가리는 월드컵 경기가 열리고 있다. 결승에서 우승한 국가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만, 흥미롭게도 진품은 시상식에서만 사용되고 곧바로 FIFA가 회수하고 있다. 그리고 이 트로피는 다음 월드컵까지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박물관에 보관된다. 선수들은 잠시의 기쁨을 나눈 뒤 잠깐 촬영을 한 다음 곧바로 반납해야 하는데도, 그 영광을 얻으려고 온 힘을 쏟는다. 이를 보며 인생 역시 덧없다는 생각을 한다. 성경 속에서 가장 부유하고 지혜로웠던 솔로몬조차 모든 것이 헛되다고 수없이 고백하지 않았던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 또한 영원할 것 같지만, 의외로 짧다면 짧다. 입양아들이 뿌리를 찾는 여정은 현실을 제대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까지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았겠는지 누군가는 알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서로 만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만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래서 도제식 교육 현장에서는 제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칭찬을 아끼고, 오히려 꾸짖으며 정신을 단련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자만을 막는 장치인 셈이다. 실제로 자신감에 가득 찬 이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입양아가 성인이 다 된 입장에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성인처럼 부모를 나무란다면 어찌될까? 부모는 황망한 마음에 그 자리를 뜨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부모가 유교적 한국 문화만을 강요한다면 입양아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미안한 마음을 가진 부모라면 오히려 입양아가 자란 나라의 문화를 배우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 언론인이자 입양인인 미샤 블록이 수십 년간 친부모를 찾아 헤맨 여정을 담은 책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제목은 ‘나는 해외 입양인입니다’로, 이 책의 첫 번째 리뷰를 내가 맡았었다. 그러나 리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큰 감정의 기복을 겪었고, 이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실감했다. 이제는 잘못된 우리의 과거를 성찰하고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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